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콘스탄티노스 2세 (문단 편집) === 재위 배경과 퇴위 === 1964년 3월 부왕이 암으로 승하하자 즉위하였으며, 9월 덴마크의 [[아네마리 다우마 잉리드|아네마리 공주]]와 결혼식을 올렸다. [Youtube(GirOnFdalyU)] [[아네마리 다우마 잉리드|아네마리 공주]]와의 결혼식 기록영화 그가 국왕이 된 때에는 그리스 정치에서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시절이었다. 즉위 한 달 전 열린 총선거에서 11년간 그리스를 이끌던 우파 내각이 패하고 중도연합당의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1세가 총리가 됐다. 처음에는 젊은 왕과 노(老)수상이 잘 이끌어갈 거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1965년 7월 그리스 군부 내 우익세력을 거세하려던 움직임이 있어 국방대신의 진퇴 문제가 나왔을 때 오히려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1세 총리를 해임하고 같은 당 소속의 요르요스 노바스를 총리로 임명하자, 그리스는 그리스 좌파와 우파 간의 다툼이 심각해졌다.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고 국왕을 공공연히 부정하던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 극심해졌고, 국왕이 총리를 지명하면 중도연합당이 장악한 의회가 거부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군부의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대령은 좌파들을 쓸어버려야 한다며 1967년 4월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리스 군사정권|군사 정권]]을 수립했다. 당시 국왕인 콘스탄티노스 2세는 처음엔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는 듯 보였으나, 그해 12월 13일 근왕파 장교들과 손잡고 역쿠데타를 시도하였다. 이 쿠데타가 실패하자 그는 일단 북부 그리스의 카발라로 파천하였다가, [[이탈리아]]의 [[로마]]로 망명한다. 파파도풀로스는 왕만 쫓아냈지 측근인 요르요스 조이타키스를 [[섭정]]으로 임명하면서 왕정을 없애지는 않았으나, 이후 왕당파는 민주화 세력과 연대하여 반군사 정권 투쟁을 벌여 정권의 눈엣가시가 된다. 결국 파파도풀로스는 1973년 7월 요식적인 [[국민투표]]를 거쳐 왕정을 폐지하는 것으로 응답했으며, 이로서 그는 공식적으로 폐위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